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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좋아하는 일 찾는 방법 ft. 인생 직업

by 자유를 그리다 2021. 8. 27.

2주 만인가?
꽤 오랜만에 글을 쓴다... 가급적이면 1일 1 포스팅 계획도 마음속으론 세워보았건만 결국 잘 지켜지지 않아 이 부분이 스스에게 실망감으로 다가온다. 정말 1일 1포스팅을 끈적하리만큼 꾸준히 하시는 블로그 이웃님들을 보고 있자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여기서 구차한 변명을 조금 대자면 사실 지금 내 뇌의 8할은 지금 딴 거에 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내 본업과 이것과 관련된 방향성에 대한 고민으로 글쓰기 같은 다른 어떤 일들에는 좀처럼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이유이다.
아니다. 이 역시도 구차한 변명으로 느껴진다.
이유야 어찌 됐든 어떤 주제로도 글을 쓰고 싶다는 동기 자체가 생기지가 않는다는 건 맞는 이유일 듯싶다.

아무튼...
그러다가 며칠 전 조금은 복잡한 마음에 연차를 냈고, 참 오랜만에 동네 근처 도서관을 들르게 되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한 권의 책을 선택하게 되고, 거기서 정말 마른 우물에 물이라도 발견한 듯 하나의 글감이 문득 떠올라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끌 적여 본다...

참고로 알랭 드 보통의 '인생 직업'이란 이 책은 아직 완독 한 상태도 아니고 이제 막 서두 부분을 지나서 읽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 서두에 등장하는 알랭 드 보통이 내준 숙제를 완성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를 넘어갈 수 없는 것이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이 숙제란 다름 아닌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이다. 내 블로그 주제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에 나는 내 블로그를 빌려 이것에 관한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을 다시금 떠올려 볼까 한다.

나는 이 책의 서두 부분을 조금 보다가 예전에 읽었던 비슷한 장르의 책 한 권이 오버랩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구본형 작가님 책으로,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라는 책인데,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강점을 찾는 부분이 생각났다. 당시 나도 이것과 관련해서 고민을 해보며 내 어린 시절의 강점과 약점들을 떠올려보게 한 계기가 됐었다. (이것과 관련된 글은 티스토리가 아닌 네이버 블로그상에서 포스팅을 했었다. 아래 링크 참조)

 

자유인 팩토리 - 자유인 양산 공장 : 네이버 블로그

평범한 IT 직장인, 2020년 반은퇴 달성, 근로 소득외 시스템 소득 노하우 공유 '돈은 주조된 자유다' by 도스토예프스키

blog.naver.com


그리고 벌써 또 2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한번 알랭 드 보통이 언급한 세 가지 단계별로 다시 한번 떠올려 봤더니 당시 기억하지 못한 부분도 새로 떠올라 다시 한번 다뤄본다.

 

인생 직업

 

1단계: 어릴 때 내가 좋아했던 일 세 가지 떠올려 보기


첫째, 자전거 타기

둘째, 컴퓨터 다루기

셋째, 야구

넷째, 만화 그리기

이거 말고도 소소하게 생각나는 건 더 있지만, 알랭 드 보통님이 한국사람들의 삼세번 법칙을 아셨는지 어땠는지... 하라시는데로 줄여서 적어본다.

내가 놀기 좋아했던 장소를 설명해 본다.


나는 집안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너무도 선호했었다. 아니 집안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걸 무척 싫어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새로 이사 온 그 집 이전의 셋방 살이 시절 때의 기억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새로 이사 온 그 집 앞 큰 골목길에서 주로 놀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골목만 나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소위 골목 죽돌이로 집안에 들어가기를 무척 싫어했던 거 같다. 집 안이 좁기도 했지만 갇힌 공간 자체를 싫어했었다. 이런 이유로 언제나 어머니가 저녁 먹어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최대한 늦게까지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직도 어린 시절 집 밖의 그 널찍한 그 골목 공간이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부산 친구 얘기론 지금 그곳이 재개발이 되어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섰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다시 찾아가 보고 싶어 진다.
어쨌든 당시 골목 죽돌이였던 나는 그 골목길에서 친구가 없이 홀로 남게 되면 집안에 있던 친구를 불러내기도 했었고, 어쨌든 집 안 보다는 언제나 집 밖을 더 좋아했던 거만은 확실하다.

비 오는 날 내 방에 있으면, 혹은 정원이나 운동장에 있으면 기분이 어땠는가?


비 오는 날의 기억을 왜 떠올려야 하는지 사실 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과 관련해서는 기억은 잘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나가서 뛰어놀기를 좋아했던 내가 비 오는 날을 분명 좋아하지는 않았을 듯싶다. 어른이 된 지금도 비 오는 날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비 오는 날 방안에 혼자 있었다면 당연히 꽤 우울해하지 않았을까?

나는 거기서 무엇을 했을까?


바깥이나 운동장에 있었으면 비 오는 날 보이는 지렁이나 달팽이 같은 생물들이나, 빗물이나 비 올 때의 식물들처럼 비가 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단계: 그 세 가지 일을 몇 줄의 글로 설명해보라.


첫째, 자전거 타는 것을 꽤 좋아했었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얘기다. 사실 초등학교 이전과 같은 더 어릴 적의 기억은 없다. 어머니가 가끔씩 얘기하시곤 하는데,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릴 적엔 내가 자전거 타는 것을 꽤 좋아했었고 또래들보다 꽤 잘 타곤 했기에 대회에 내보낼 생각도 하셨다고 하니(솔직히 믿어지진 않지만) 나름의 재능은 조금 있던 거로 보인다.

둘째, 컴퓨터 다루기

 

Apple II, By Flickr

여기서 다루기라고 표현한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당시 내가 존 폰 노이만처럼 수학 천재라서 컴퓨터를 가지고 뭔가 창조적인 일은 당연히 하지 않아서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나는 내가 살던 동네에 무슨 연유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유행처럼 번진 컴퓨터 학원이란 데를 동네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다녔었다.

셋째, 야구
요건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른 기억이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야구하는 걸 꽤 좋아했었다. 물론 당시 만년 꼴찌였던 롯데가 그 해 1984년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운 좋게 한국 시리즈 우승까지 한 것에 감동받아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게 동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야구할 때의 내 포지션은 언제나 투수였다. 지금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당대 슈퍼스타였던 최동원 선수를 떠올리며 실제로도 최동원 선수의 폼을 따라 하며 투구를 했었다. 그게 아니면 차선으로 내가 선택한 건 또 포수였다. 내 마음속 또 한 명의 스타였던(최동원만큼은 아니다.) 이만수 선수를 떠올리며 포수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넷째, 만화책 보기, 만화 그리기
요것도 새로 떠오른 기억이다. 세가지만 떠올려 보라 했지만, 요 만화 그리기를 하며 보낸 시간이 꽤 크기에 빼면 안 될 거 같아 적어본다.

3단계: 내가 그 일을 왜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상상해보라.


눈을 감고 그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라. 최고의 순간을 자세히 설명해보라.

첫째, 자전거 타기
초등학교 시절 땐 자전거를 너무 가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극구 반대로 자전거를 사진 못했지만, 주말에 가끔 동네 친구들과 당시 집 근처 종합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타곤 했었다. 서로 누가 빨리 가나 대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탔었던 기억이 난다. 바람을 가르며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는 그 물건은 내게 나름의 해방감 내지 자유를 느끼게 해 줬던 듯싶다.
그런데 당시 내가 자구 다녔던 동네 근처 그 종합 운동장은 가끔씩 불량한 형 누나들도 있던 우범 지대였다. 나 역시 당시 자전거 대여점에서 일하던 꽤 불량해 보이는 한 20대 정도로 보이던 형님에게 삥 뜯길뻔한 안 좋은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물론 당시 나는 진짜 돈이 없어 잘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 사건 이후론 자전거를 타러 다니지 않았었다.

둘째, 컴퓨터 다루기
당시 내가 다닌 컴퓨터 학원은 집과 가까운 시장 골목 안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원의 위치가 이 장소와 좀 어울리지 않게 시장통 안에 있었다. 어쨌든 대형 떡이 꽂힌 떡볶이와 오뎅국물 냄새를 맡으며 가게들을 지나면 그 학원 건물이 나오고 그 건물 안의 계단을 올라 2층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진다. 그 공간 안에는 본체와 모니터가 합체된 당시 '애플 2'라는 꽤 미래 지향적으로 생긴 기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나는 당시 이 기계들에 꽤 큰 호감을 느꼈던 듯싶다. 단지 보고 만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꽤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또 당시 학원 원장님이 거금을 들여 구매한 후 너무도 아끼시던, 그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본체와 모니터가 분리된 IBM 컴퓨터도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나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던 기억도 얼핏 난다. 이 기계들은 보이는 비주얼도 그렇지만 사실 컴퓨터 게임이라는 훌륭한 오락거리를 제공했기에 내가 더 설레지 않았을까 하는 기억도 스쳐 지나간다.

셋째, 야구
동네에서 야구할 때면 내 포지션은 투수 아니면 포수였던 거로 기억한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또래들 사이에서도 투수 포지션은 누구나 맡고 싶어 하던 선망의 포지션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그런 이유로 간혹 포지션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면 나는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포수를 맡곤 했다. 이유는 투수만큼 주목받는 건 아니지만 나름 공을 많이 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랬다. 그리고 포수는 공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꺼려하는 특성이 있기에 나름의 인지도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 내 성격은 겉으로 보면 수줍음이 많아 보였지만 실제론 욕심쟁이에다가 주목받기도 꽤 좋아하는 성격도 동시에 있는 아이였던 거 같다.

넷째, 만화책 보기, 만화 그리기
이건 사실 초등학교 때는 아니고 중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그러기에 알랭 드 보통이 언급한 범위에는 많이 벗어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억으론 만화 보는 것을 꽤 좋아했었고... 아하~ 그러고 보니 방금 생각 난 기억이, 내가 갓난아이였던 때 어머니가 만화 가게도 했었다.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형들이 가게 안에서 나를 안고 있는 사진도 본 기억이 난다.
이런 이유로 어린 시절 집에는 만화책이 많았었다. 주로 강감찬이나 을지문덕처럼 전쟁 위인들을 다룬 만화책을 꽤 흥미 있게 본 기억이 난다. 이런 어린 시절 환경 때문인지는 정확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만화책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었고 또 나만의 방식으로 만화 캐릭터 그리기는 또한 좋아했었다. 돌이켜보면 거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도 난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극소수로 보인다.(물론 아닐수도 있다.) 아니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 하는 그 일이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 조차 모른 채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오늘 포스팅은 이런 분들에게 한번쯤 자신의 과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려 보며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 기억들이란 당장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할 듯 싶다. 나 역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본 기억은 아니라 정확하지 않거나 더 좋아했던 다른 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알랭 도 보통도 강조했듯, 되도록이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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