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해야 잘 해낼 수 있을까?"
오늘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내가 생각지 못했던 접근법으로 다시 한번 글쓰기로서 알아보려 한다.
나는 지난 포스팅에서 나의 어린 시절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한 것들에 대해 떠올리며 이것을 찾아보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금 다른 관점의 접근법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접근법으로 내 내면 깊숙한 곳에 묵혀져 있던 것들을 끄집어 내보려 한다. 사실 이 방법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과거 내가 봤었던 어떤 책 한 권의 글에서 떠오른 무의식의 기억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새로운 관점이란 바로 과거부터 현재 시점까지에서 내가 스스로 예민하다거나 둔감한 것들과 관련된 것이다.
얼핏 들으면 갸우뚱하며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예민하다거나 둔감한 것이란 개인마다 다른 것이니까... 각자 기질이나 살아온 환경, 교육, 나이와 같은 경험치들이 모두 다르기에 당연한 결과이다.
물론 '예민하게 반응'한다라는 것은 통상 인간관계적으로만 보면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자칫 인성적으로도 까칠해 보인다와 같은 좋지 않은 이미지로도 보이기에, 대부분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성격일 듯싶다.
하지만 이 예민한 성격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반대로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장점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보통 사람들은 그냥 퉁 치고 가볍게 여기는 하찮은 일들이지만, 예민한 당신은 이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예리한 뭔가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블루오션과 같은 자신만의 경쟁력이 되고 나아가 수익으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된다는 원리이다.
서두 빼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나는 이 예민하거나 둔감한 것에 관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먼저 내가 생각하기에 남들보다 둔감하게 반응하거나 생각하는 일들이다.
음식이다. 싫어하는 음식이 별로 없고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다. 누가 이것저것 권하면 거절하지 않고 잘 받아먹는다. 부산이 고향임에도 전라도 음식인 홍어도 잘 먹고, 처음 여행 간 나라의 이질감 느껴지는 음식들도 꽤 잘 먹는 편으로 봐선 그런 듯싶다. 그런데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된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고 해서 대충 먹는 건 또 아니다. 대충 먹는 것과 음식 자체에 편견이 없고 둔감한 건 분명 다르다. 이 부분은 뒤의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에서 다시 다뤄보자.
꼼꼼한 것에 둔감하다.
말이 좀 이상한데, 그냥 꼼꼼하지 않은 거다.
특히 일처리면에서 꼼꼼하지 않아 실수가 많은데, 이런 꼼꼼한 것에 나는 꽤 둔감한 편이다.
사실 직장 생활에서는 이런 꼼꼼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 또한 나는 잘 안다. 특히 내가 하는 코딩이나 문서 작업등에서는 이런 오타와 같은 작은 실수는 꽤 큰 약점으로 부각되곤 한다. 물론 그것을 안 지금은 의도적으로 천천히 하거나 여러 번 끊어서 보곤 하기에 실수를 줄이지만, 솔직히 내 타고난 성향과는 맞지 않고 상당히 피곤함을 느낀다...
오랜 세월 워낙 꼼꼼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기에 더욱 그런 듯싶다. 반대로 대충이라도 뚝딱뚝딱해서 빠른 시간에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건 또 잘하고 본능적으로 그런 걸 더 선호한다.
이외에 다른 둔감한 면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음으론 내가 생각하기에 평소 나들 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생각하는 일들이다.
다시 위에서 한번 언급한 음식이다.
나는 아무거나 잘 먹긴 하는데, 그렇다고 대충 먹진 않는다. 즉 미식가이다.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야 직성에 풀리고, 또 한 끼의 메뉴 선택도 꽤 신경 쓰고 사는 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밥시간 되었으니 '대충 때운다' 따위의 표현을 평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배가 고프지 않거나 어떤 다른 급한 일이 있는 상황 일지라도 먹는 건 또 확실히 챙겨 먹어야 하는 까다로운 성격이다.
거기에 또 가급적이면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즐기며 먹는 편이다. 이런 나를 주위에선 간혹 이해 못하거나 답답해하는 것도 느껴지는데... 이런 이유로 나 역시 회사 같은 공식 자리에선 사실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조금 불편해하곤 한다. 솔직히 요즘처럼 혼밥 하기 좋은 분위기가 나는 오히려 참 좋다.
물론 이렇게 잘 차려 먹는다는 것은 가끔씩 주위 사람들을 꽤 피곤하게도 만든다는 점에서라도 그다지 자랑할 일만은 아닌 것 또한 잘 안다. 그런데 타고난 성향이기에 어떡하랴? 고치려고도 노력해 봤지만 나만 힘들기에 이제는 이런 나를 그냥 받아들이려 한다.
외모에 민감한 편이었다.
지금은 잊힌 기억 하나가 번뜩 떠오른다.
10대 20대 시절 나는 외모에 꽤 많이 신경 쓰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운 과거이기도 한데 당시에 그러했었다. 내가 당시에 외모에 관심이 많았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또래 친구들보다 내가 특출 나게 뭔가를 잘한다거나 내세울만한 게 단 1도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나 스스로의 컴플렉스가 그 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10대 였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20대 초 즈음엔 내가 생각해도 이게 좀 병적으로 심했는데, 당시 유행에 뒤질세라 언제나 외모에 예민했었다. 시작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엔 어느 학교나 교복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내 교복은 다른 친구들과 비교될 만큼 꽤 유별났었다. 언제나 빳빳이 다려진 모양새였기에... 사실 이건 내 의지와는 사실상 무관했다. 어머니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던 아들이 자칫 기라도 죽을 까 봐 보이는 교복만은 언제나 빳빳하게 관리해 주신 탓이었다. 한 선생님은 이런 나의 칼주름 바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지 내 이름 대신 '칼주름'이라 부르며 그 칼처럼 날카로운 주름에 비이겠다며 농담 하셨던 기억도 난다.
이후 이것이 먹힌다는걸 본능적으로 알고부터 나는 이 방향성을 계속 유지한 듯하다. 가끔 대학 시절 친구들을 만나 당시를 회상할 때면 나란 사람의 이미지는 꽤 확실한 편이기에 그렇다. 이렇게 한번 무의식에 박힌 이미지란 건 사실 꽤 강력하다. 일단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언제나 외모에서는 깔끔했었던 당시 이미지 하나만은 확실히 그들의 뇌리 속에 박혀있는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하지만 당시 거울 앞에서 이런 나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가끔씩 들키곤 했었는데, 정말 세상 한심하다는 표정의 아버지의 얼굴 표정도 함께 오버랩되곤 한다. 즉 보이는 외모보다는 내면의 능력적인 면들을 항상 강조하셨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버지가 어떤 의미로 강조하신건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예전 한때 나는 옷 입는 것 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에 예민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 습관이란게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듯 싶다. 옷 입는 것과 관련해서 사실 내가 얼핏 보면 언제나 단벌이라 대충 입는 것처럼도 보여도, 남자치곤 지금도 꽤 신경 쓰는 편인 듯싶다.
그것과 함께 머리 정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 10대 20대 땐 헤어 스타일에 따라 하루 기분을 좌우할 정도로 병적으로 심하게 예민했던 시절도 있었다. 예전 어느 TV 예능 프로였었나? 외출 전에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머리를 감고 가는 엽기적인(?) 남친 얘기가 나왔었다. 그리고 고민녀는 그런 남친과 헤어져야 하는지 까지 고민했었는데... 그런데 당시 나는 그 사연의 남자가 이해가 되었었다. 내 얘기였으니 당연히... 반대로 그런 행동 하나 이해 못하던 청중들의 반응을 나는 이해 못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다.
또한 살찌는 것에서도 많이 예민했었다. 특히 20대 땐 내가 찌는 거도 싫었지만 이성 동성을 떠나서 살찐 사람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 역시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종합해보면 나란 사람은 과거에는 외모에 꽤 집착하고 민감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심지어 지금의 나는 외모에 신경 쓰는 시간이 아까워 같은 디자인의 여러 옷을 사서 입곤 한다. 하지만 잊혀 있는 내 무의식 속 수면 아래에는 그런 면이 분명 남아 있는 것이다.
언어에 민감하다.
보기와 달리 말에도 꽤 상처 잘 받곤 하기에 언어에도 예민한 편이다. 이것은 예전 직장의 같은 팀의 여직원이 한 말에서도 발견할 수 있겠다. 특히 직장 상사나 동료가 얘길 하면 다른 남자 직원들은 그냥 무덤덤하게 거기서 무반응으로 끝나는데, 항상 나만 한번 더 말을 거들어 말이 길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예전부터 한마디 한마디 말에 좀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던 거 같다. 물론 이것 역시 지금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오랜 직장 생활로인해 수동형 인간이 되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이제는 웬만한 불의를 봐도 잘 참는, 지금의 나 역시 과거의 그들처럼 바뀐 듯싶다...
일정에 민감하다.
정해진 계획 특히 시간 약속, 일정 등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예민한 편이다.
한 예로 출장 등으로 오전 10시 비행기 예약이 되어 있다면, 나는 언제나 대략 2시간 이전에 미리 그 장소에 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언제나 일행 중엔 10시 딱 맞춰서 움직이는 일행이 분명 있다. 그렇게 함께 움직이는 경우에는 꽤 많이 짜증 나고 피곤했었던 기억도 난다.
또 일적으로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일정에 예민한 편이다. 프로젝트 중에도 정해진 일정이 있으면 딜레이 하는 경우란 거의 없는 편이다. 간혹 외부적인 요인으로 딜레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엔 스트레스까지 받으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여기서 문득 프로세스를 개선해주는 작업과 관련된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을 듯싶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선 조금 심하게 예민한 편이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사실상 이 부분에서 나는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반대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 상사로부터 어떤 지시받는 것이 너무 싫었고 지금도 싫다.
여러 번 곰곰이 생각해봐도 역시 나는 직장과 같은 조직 생활에는 맞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들만 좋아한다. 이런 경우라면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다지 실망한다 거나 하는 일도 없다. 자칫 내로남불 로 보일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스스로 선택했기에 그런 듯싶다. 반대로 내키지 않는 일을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경우엔 그 결과가 좋더라도 불만이다. 심지어 그 일을 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더라도 이 경우라면 감흥조차 느낄 수가 없다. (내 성격이 이상한 거일진 모르겠는데) 아니 그 경우가 더 짜증 난다.
사람을 관찰하는 능력
이 능력은 정신 건강상 그다지 도움될일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예민하게 관찰하는 기질이 또 분명 있다. 특히 장단점 같은 것들을 잘 찾아낸다. 물론 그런 것을 찾아냈다고 해도 오랜 훈련으로(?) 그들 앞에서 직접 말을 꺼내진 않지만... 어쨌든 그렇다.
글을 쓰고 전체적으로 보니, 나란 사람은 둔감하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반대의 성격인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들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나의 성격을 종합해보자면 조금 예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예민하게 반응하는 소위 까칠한 이면에서 경쟁력이 될 수 있는 무엇이란 퍼즐들을 하나씩 맞춰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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