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은퇴의 완벽한 타이밍이란 것이 있을까?
이 질문은 내가 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 오던 고민 중 하나이다.
누구는 10억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30억은 돼야 한다고도 얘기한다. 또 누구는 언제 그 돈 모으고 있냐며 5억만 모야도 바로 은퇴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여기에 완벽한 타이밍이란 없지 않을까?' 정도가 현재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인간의 시간과 생명력은 유한하기에 완벽한 타이밍도 이란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는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2년으로 12월 31일.
불이 꺼진 조용한 사무실... 고요한 정적과 긴장감이 흐르던 늦은 오후, 사무실에선 연말 이벤트로 진행되어 많은 동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던 워크래프트2 토너먼트 결승전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회사는 스타크래프트에 이어 워크래프트3가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사무실은 결승자 단 두 명만의 치열함이 뭍어나는 키보드와 마우스 똑딱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그리고 토너먼트에서 패배한 나머지 동료들은 각자 선택한 결승자에게 우상 상금 만 원씩 걸고 옵저버 모드로 숨을 죽여가며 게임을 구경 중이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우와~ 웅성웅성~" 함성과 함께 사무실 전등이 켜졌고 치열했던 긴 시간을 뒤로 한 채 패자와 승자의 희비가 가려진 것이다.
몇 달 전의 지인들의 소개로 들어온 프로게이머 뺨치는 실력의 소유자인 박 대리의 승리를 의심한 동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업셋 경기였다. 평소 구경하는 직원들과 실력차가 거의 느껴 않던 이 주임이 승리한 것이다.
당시 경력 사원이었던 박 대리는 이미 스타크래프트에서도 레더 순위에도 오르내리며 사무실에서도 현란한 단축키 손기술과 함께 넘사벽 실력을 뽐내던 캐릭터였던지라 그런 예상은 당연했다. 반면 이 주임은 평소 그들과 그다지 다르지구 않은, 특별한 기술이 전혀 보이진 않았다. 마치 약팀을 만나도 언제나 고전 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 처럼, 그들과 엎치락 뒤치락 하며 겨우 이기기는 하는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금 깊이 분석해 보면 이 주임은 그들과 다른 분명한 무서운 비기 하나가 숨어 있었다. 박 대리 역시 나중에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자신은 평소에도 이 주임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였다라고 실토하는데...
이 주임의 전략은 사실은 아주 단순했다. 이기는 게임, 즉 지지 않는 게임만 하는 전략. 시작부터 재빨리 자원(돈)을 모으고 방어만 하다가 확실히 이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에 비로소 공격하는 전략이었다. 이런 이유로 항상 상대들은 기다리는 시간에 질려 닥공하다가 이 주임의 탄탄한 방어와 자원에 당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 전략은 지기 매우 힘든 전략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전략의 확실한 단점도 분명 있었다. 바로 시간. 시간이 무한대인 게임에서는 유리하지만, 만약 유한하다면 얘기가 정말 달라질 것이다.
즉 인생이란 게임에서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 주임은 바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필명 프리맨 본인이다.
매년 12월 마지막 날이면 언제나 이 추억이 스쳐 지나가곤 하지만, 지금 의식의 흐름에 맡기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마치 내 자랑 같아 보이는데, 실은 그 반대이다.
확실한 타이밍!
그렇다. 나는 언제나 이런 마인드로 살아온듯싶다.
처음에 정한 어떤 확실한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하는 다소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바로 나이다.
나는 현재 누군가에겐 매우 소소할 수 있지만, 어쨌든 운도 따라 처음 계획한 목표란 것을 어느 정도는 이뤘다. 하지만 또다시 여러 위험 요소들을 스스로 만들었고, 또다시'확실한 타이밍'을 위해 은퇴 아니 먼저 휴직 계획을 미루기를 2년째 하고 있다.
또다시 위험을 감안해서 목표 자산 금액을 더 늘려 잡는다. 계획도 일단은 정권이 바뀐 이후 상황을 봐야 하기에 또 미룬다. 거기에 다니던 회사도 지루하지만 어찌 될지 모르니 상황 봐가며 또 몇 년은 더 다니면서 천천히 봐야 할듯싶다. 등등
사실 조기 은퇴, 아니 그 이전에 시뮬레이션을 위한 휴직 계획도 세웠었지만 또 미뤄졌다. 어쩌면 시간이 유한했던 온라인상의 게임의 세상에선 이 전략이 꽤 잘 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인 사람의 인생 게임에서도 이 게임 세계의 전략이 정말 통하는 걸까?"
먼저 게임에서 자원에 해당하는 돈을 생각해 본다. 게임에서도 이 돈은 유한하다. (없으면 '쇼미 더 머니'같은 치트키로도 가능하니...) 어쨌든 현실 세계에서도 레버리지를 이용 하는 방법 처럼, 이 돈이란 유한하다는 것은 비슷할듯싶다.
하지만 시간은 좀 달라 보인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일단 이 시간이란 걸 무한대로 늘리는 능력 자체가 없다. (물론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인류를 이주 시킬때 즈음 불로장생 같은 기술이 개발된다면야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람의 생명력은 유한하기에 당연한 이야기이다.
계속 '완벽한 타이밍'을 위해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완벽한 타이밍인 70살에 100억을 만들고 은퇴한다면? 드디어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올렸던 40살 되기 전에 계획했다가 미룬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될 것이다.
물론 목표를 이뤘다는 점에서는 이 역시 훌륭한 가치가 있겠지만, 이때의 감흥이란 늘어난 나이만큼 더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곤돌라 안에서 내내 졸며 베네치아의 대운하와 아름다운 야경 정도는 깔끔히 지워져 버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돈은 무한하지만 인간의 생명력은 무한하지 않다. 시계를 돌려 청춘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보고도 싶지만 인간은 그럴 능력은 없다.
이제 오늘을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이 '완벽한 타이밍'이란 걸 내려놓고 한번 끊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게임이었다면 지금의 타이밍은 어쩌면 빈틈이 많고 준비가 다소 부족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무한 저그 공격이나 보이지도 않았던 곳에서 다크템플러에게 "쓰~윽" 소리와 함께 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완벽한 타이밍만 쟤며 안전해 보이지만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잠시 떠나 보려 합니다.
- 2021년 12월 마지막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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