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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퇴 Story

서울에서 시골 황토방 이주?

by 자유를 그리다 2022. 3. 5.

지난주 일요일, 우리 세 식구는 조그만 차에 한가득 짐을 싣고 어느 시골 마을의 황토방으로 향했다.

이로서 휴직을 계획한 달에 결정했던 시골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농촌 시골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5일 차가 되는 시점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육휴 시작한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란 체감될 정도로 정말 빨리 지나간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로 보이는 나의 지금 이 시골 생활은,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조금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적응이란 게 솔직히 잘 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면 우리 세 식구는 왜 이런 조금은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된 걸까? 일단 그 이유부터 찬찬히 한번 풀어보자. 이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두 달 전 시점으로 되돌아 가 봐야 할 듯싶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바로 요거야~!" 같은 단 한 가지의 단순한 이유는 아니다. 우리 가족의 일원들 각자 나름의 관점에서, 그것도 몇 가지의 서로 다른 이유들이 뒤섞여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결정에는 복잡계란 것이 존재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다. 그러면 여기서 이 결정에 가장 많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순서대로 한번 정리해 보자.

 

 서연이(딸, 가명)

 

지금 서울은 극심한 코시국 상황으로 많은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야만 한다. 따라서 평소 아이는 일상의 지루함과 답답함을 호소하곤 했는데, 이런 이유였을까?

 

시골 학교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는 시골 학교에 꼭 한번 다녀보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골 학교란 장인 장모님이 지금 살고 계시는 충남 소재의 처갓집 근처의 시골 초등학교이다. 전교생이래 봐야 50명이 조금 넘는 작은 시골 학교이다.

 

거기서 왜 다니고 싶은지를 물어보면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거기 가면 깜지도 있고 마스크 없이도 뛰어놀 수 있잖아?" 물론 내가 보기엔 그게 다가 아니다. 그보다는 엄마는 안되지만,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 조르면 뭐든지 다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는 점. 또 지금 집에는 없는 TV도 마음껏 볼 수 있고(지금 집의 거실에는 TV가 없다), 처갓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깜지와 코코랑도 놀 수 있고, 바로 코 앞이 바다라 놀 거리와 먹을거리가 많다는 점들이다.

 

칭찬 상장

 

어쨌든 아이는 깔끔하고 편안한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엄마의 추억이 묻어 있는 시골에서 살며, 시골 학교도 다니고 싶어 했다.

 

 

 와이프 (와 처가)

 

사실 결정 권한으로만 보자면 와이프가 1순위 같지만, 어쨌든 처음 원인 제공자는 아니기에 2순위로 정리해 본다.

와이프 역시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시골 학교에 보내면 어떨지 내게 물어보곤 했었다.

 

서연이가 시골에서 학교 다니고 싶다고 말하네?

 

그러던 중 처갓집 근처에 예전에 와이프의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황토로 빚어진 집이 지금은 비어있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장인 장모님도 우리가 오는 건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전에 다른 모르는 사람에게 빌려줬더니 집을 엉망으로 써서 이제는 식구들끼리 쓰는 용도로 하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그 황토방은 장인어른께서 1년을 공들여 수리도 이미 끝낸 상태였다. 정말 미리 이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황토방

 

그리고 와이프 역시 지금의 코시국 상황에서 일단 1년 정도는 시골 학교를 보내보며 서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몇년 전 허리 수술로 거동이 조금 불편하신 엄마 곁에서 엄마를 도와주고 싶다는걸... 거기에 어린 시절 추억도 스며 있는 그곳에서 서연이와 함께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솔직히 나 역시 예전에 막연하게나마 상상으로 생각해보긴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곤 했었고, 어쨌든 계획에 없던 일이다. 그런데 아이 역시 꽤 진지하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는 점과, 다음 세 가지 이유들로 그들의 결정에 순수히 받아들이기로 생각을 바꾸게 된다.

 

하트
하트

 

첫째, 아이 추억 만들기 & 나도 답답하다

 

내가 서연이만 했던 시절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문득 "지금처럼 아이들의 추억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금 상황은 이 세대의 아이들에겐 추억이 아니라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회색빛 흑역사는 아닐까?"

 

어린아이들이 이런 시국에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등교와 하교를 해야만 하고, 거기에 답답한 마스크를 끼고 그 공간에 갇혀 있어야만 한다. 또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란...

 

꽃

 

"이런 시기에 오히려 아이에게 어린 시절에 좋은 추억 하나 정도 만들어주면 어떨까?"

 

"지금 나 역시 육휴 상태라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리고 나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래, 결정했어!"

 

둘째, 미니멀리즘 그리고 자유

 

윌든을 처음 읽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윌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지금처럼 대중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본 만능 주의와 집산주의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에서 조금 벗어나, 숲이나 바다가 있는 자연에 둘러 쌓여 자유인으로 한번 살아 보는 것'은 예전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시골길
시골길

 

물론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지중해가 보이는 먼 이국땅이나 조금 물러나서 제주도처럼 이국적인 느낌을 맛볼 수 있는 장소를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숲과 바다가 모두 있는 조건은 일단 만족하기에 지금 경험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현재 나는 서울에 실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비어있는 상태다. 당분간은 황토방과 서울 집을 오가며 적응 기간을 두고 지내볼 생각인데, 집에 있는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기고 나머지 물건들은 조금씩 정리해 볼 생각이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유함은 우리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물건의 숫자에 비례한다."라고.

 

그렇다! 나는 탐욕이 물들어 있는 물건을 포기하는 대신 시간의 부유함을 누리고 살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내려놓을 수 있는 물건의 수를 더 늘려야 한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서 즉흥적으로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체질 개선이 최종 목표이다.

 

셋째, 자산 리벨런싱

 

이 부분 역시 두 번째인 미니멀리즘과도 관련이 있겠다. 현재 나는 순자산은 꽤 늘었지만 처음 목표로 한 현금흐름 비중면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편이다. 내 자산 비중의 대부분이 부동산 쪽에 묶여 있는 이유이다. 거주 중인 서울의 신축 아파트를 깔고 앉아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계획을 조금 수정해 보기로 했다.

 

'깔고 앉은 집을 최소화하기'

 

"깔고 앉은 집은 자산이 아니다" 많은 재테크 서적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이 탐욕을 내려 놓기란 쉽지 않은 선택지이다. 소파에 누워 새하얀 벽지와 깔끔한 몰딩을 보고 있자면 아쉬운 마음에 망설여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지금 새집은 임대를 주고 현재 임대를 중인 다른 구축 집은 내년에 임대 끝나면 조금 손을 봐서 들어가 볼 계획이다.


 

여전히 황토방 옆 집을 지나갈 때면 목줄도 안 한 작은 개가 가두리를 뚫고 짖어 댈때는 정말 적응이 되진 않는다. 물론 가두리는 있지만 가끔 조그만 그 녀석은 가두리의 틈을 뚫고 나오기도 한다... 담벼락 넘어 멀직이 보고 있으면 새끼까지 합하면 대략 열 마리는 되는 듯하다.

또 저녁에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땔 때면 기가 막히게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깜냥이 녀석도 아직은 낯설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것들도 잠을 자다가 소변을 보러 바깥에 위치한 화장실 가야 할 때 보다는 차라리 낫다.

불멍
불멍

 

사실 나는 수십 년을 도시에서, 그것도 아파트 키즈로 오래 살아왔기에, 뭐든 조금씩 손이 더가는 지금의 편하지 않은 시골 환경에 금방 적응하리라곤 처음 부터 기대하지도 않는다.

 

시골 생활의 불편함이 익숙해질 때 즈음, 이때의 불편함이 오히려 추억으로 남을 그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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