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어떤 이유 때문인 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산이 좋아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등산을 새로운 취미로 해보자는 결심을 했고, 야심 차게 등산복 등산화등 장비부터 하게 된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했나? 등산을 많이 가봐야 봄, 가을 딱 산이 생각날만한 계절에, 그것도 기껏 일 년에 손에 꼽힐 정도로 가본 듯싶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잠자고 있던 내 본능이 "산에 가야 한다~"며 이 기억을 되살려낸다. 요즈음 꽤 게을러진 내 정신 상태를 바로잡기엔 산 만한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일까?
어쨌든 다음날 아침 나는 등산 채비를 그럴싸하게 갖추고 신발장에 고이 모셔놨던 등산화를 꺼내어 신고 길을 나선다.
등산할 산은 평소 서울에 살면서도 한 번은 가보지는 싶었지만 쉽게 가봐지지 않았던 산인 수락산이 었는데, 길을 나서며 갑자기 도봉산으로 결정한다.
결정한 이유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습게도 내가 알고 있던 수락산이 사실은 도봉산이었던 이유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착각하며 살았다니... ㅎ
어쨌든 나는 1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 내린다. 평일이라 사람은 생각했던 것만큼 한적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적당한 정도로 등산객이 있었다.
1호선 도봉산역 1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다. 그리고 등산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서 대략 5~10분 정도 걸으면 도봉산 등반 입구가 보인다.
서울에 근접한 대중적인 산이라 그런지 가는 중에는 먹거리 볼거리가 재미를 주었다. 구경하며 가다 보면 금방 등반로 입구가 보인다.
나는 도봉산에 처음 온 초보답게 초보가 갈 수 있는 등산코스로 찾아봤다. 찾아보니 천축사 - 마당바위 - 신선대로 가는 길을 추천하길래 따라가 보았다.
안내판대로 나는 천축사, 자운봉 방향으로 향했다. 여기서 천축사만 기억하고 가면 길 잃은 걱정은 없을 듯싶다.
산을 올라가는 중간중간에 친절하게 안내판들이 자주 보인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드문드문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느덧 자운봉, 마당바위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당바위 근처에서 오잉? 왠 고양이가 있네? 도봉산 지키는 고양이인가? ㅎ 느긋하고 낭창낭창한 몸짓의 이 고양이들은 산을 오르는 중에도 마치 길을 안내하기라도 하듯 내 주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나? 이날은 산 위로 올라가면서 약한 빗줄기와 함께 바람도 조금 거세어져 갔다.
안개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없을 땐 조금 음습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일단 여기서 출출해서 급하게 간식으로 싸가지고 온 크래미 꺼내 먹는다. 역시 산에서 먹는 간식은 다 꿀맛!
날씨가 조금씩 더 좋지 않아 진다. 비슷한 발걸음으로 오던 등상객 두 분은 선인 쉼터에서 만족하고 바로 내려가셨다. 나 역시 조금 무서운 분위기(?)도 들어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어쨌든 신선대까지는 가보기로 한다.
요 난간 잡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신선대 정상인데, 이때부터 비바람이 점점 더 거세진다. 바윗 바닥도 빗물에 미끄러운데 안개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일 정도.. ㄷㄷ
지형지물이 없는 바위에 오르니 비바람이 너무 거세서 정말 날아갈까 봐 온몸으로 바위를 꽉 잡았다. 정말 꽉 껴쓴 모자가 날아갈 거 같았는데 날아가면 모자는 버리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또 나름 기념한다고 인증숏은 남겼다.
신선대에서 조금 내려와서 긴장감을 내려놓고 선인 쉼터에 앉아 있으니, 날씨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개이기 시작한다.
이로써 무사히 오늘 도봉산 등반 미션은 무사히 완료!
대략 성인 걸음걸이로 천축산 - 마당바위를 거쳐 신선대까지는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면 올라간다. (평소 등산을 하지 않는 나는 이날 대략 2시간 언더로 올라갔으니 참고하시길) 그리고 가급적이면 비가 오는 악천후라면 신선대까지 오르는 것은 개인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바위가 급경사에다 바닥도 꽤 미끄럽고 바람도 세기에 낙사의 위험이 느껴졌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오르고 싶다면 날씨가 좋은 날이나 선인 바위 정도에서 만족하는 게 좋을 듯싶다.
이날은 자연의 힘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나, 자연의 눈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하루였다. 산을 오르는 동안은 마음의 떼가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느낌도 들어 의식적으로라도 등산을 해야겠다고 또 한 번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미션인 도봉산 신선대를 오르긴 했지만 그 작은 바위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 바위를 온몸으로 꽉 붙들고 서있던 순간이 하루 종일 기억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정도의 성취욕 역시도 결국 자연 앞에서의 나의 영향력 또한 미미한 것이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한 없이 작은 의미 없는 존재로 느껴질 정도가 아닌가? 그리고 인간이란 지구에 존재하는 수 천만의 생명체중 한 종류에 불과하다는 것. 지구는 어떤가? 은하계에 있는 천억 개가 넘는 행성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은하 역시도 우주에 있는 대략 2조 개의 은하계 중 하나일 뿐이다. 즉 우리 인간은 대자연의 눈으로 보면 한 없이 미미한 존재이며 생명력도 짧고 유한하기 까지 하다.
결국 대자연의 눈으로 보면 더없이 짧고 미미한 인생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만은 자연과 함께 즐기며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란 생각도 동시에 해보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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