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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내가 세상에 던져진 이유

by 자유를 그리다 2022. 4. 19.

오후 산책 중에 나 스스로에게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지구, 이 행성에 태어난 인간들에게 주어진 과제란 무엇일까?"

 

조금 엉뚱해 보이는 질문 같지만,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 또는 가치를 찾기 위한 원초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우 간단한 답 하나가 번뜩 스쳐 지나가서 적어본다.

 

'나'를 온전히 깨닫는 것


 

이미 자기 내면의 '나' 안에는 대우주의 만상이 있다는 건,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이다.

 

물론 이 논제 자체나 논제의 답은 너무 어렵다. 과학적으로도 설명하기에도 스스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나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양자학에서 말하는 의미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어렵지 않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이런 '나'에게만 주어진 '삶의 의미'라는 개별적인 과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본능이 솟구쳤다. 물론 인간을 제외한 대다수의 동물들은 이런 고민따위는 하지 않을 듯싶다, 아니, 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인간 역시도 여타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본능의 뇌인 구피질의 영향도 받는다.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생리적 욕구와 바로 위에 존재하는 안전의 욕구 정도가 여기에 해당될 듯싶다.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
wikimedia

 

하지만 조물주는 인간을 빚어 만들 때 이런 동물들과 구별되는 확실한 차별점 하나를 살짝 넣어서 만들었다. 바로 이성을 담당하는 신피질이다. 싸고 싶으면 싸고 먹고 싶으면 먹고 짖고 싶으면 짖는 동물들은 거의가 100% 자신의 본능에 지배를 받으며 삶을 살아가지만, 인간만은 분명 이들과 구별된다.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될 거 같은데?"와 같은 감정이라던지, 거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누군가로부터 존경받고 싶다" 거나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와 같은 사회적인 성취 내지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넓게 해석해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이 바로 이 신피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를 온전히 깨닫는 것 역시도 어쩌면 생리적 본능의 상위에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가능한 본능적인 욕구로 보인다.

 


 

그러면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내가 온전히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는 무엇일까? 란 질문을 생각해 보자.

 

'나' 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본능.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기본적으로 보이는 질문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지도 못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또 어떤 것인지 등... 결국 먼저 '나'를 제대로 알아야만 답을 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이 답을 제대로 모른체 이 행성을 떠나는 사람들 역시 많아 보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사상으로 해석하자면 또 한번 '나'를 탐구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고 이 행성으로 환생하는 걸 지도 모를 일이다. 철학자 니체 역시도 영원회귀라는 비슷한 의미의 말을 했었다.

 

니체
Flckr


 

인생의 여정이라는 작은 관점으로 다시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에 대해 간략히 다시 정리해 보자.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죽는 그날까지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이 '나'라는 실타래를 푸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 실타레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른 실타레가 주어진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쩌면 속세라는 가두리 안에 갖혀 있기에 바로 눈앞의 이익만 바라 보며 본능적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이 실타레를 제대로 들여다 볼 여유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 결과 이 '나'에게 주어진 살타레를 제대로 풀지 못한채 이 세상을 떠나곤 한다. 그리고 영원회귀처럼 윤회를 거쳐 다시 비슷한 모양의 실타레를 안고 또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닐까?

 

자신 내면 안에 우주가 있고, 그 영역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의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평행 우주처럼, 자신의 운명이란 것 또한 다수로 존재하며, 마치 여러 버전의 '나'가 존재하며 이 다수의 홀로그램의 타임라인상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여러 버전이 발행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삶의 의미는 이 타임라인에 존재하는 하나의 소스이자 변수가 된다. 그리고 지금도 이 과제를 스스로 하나씩 알아감으로 또 새로운 버전의 '나'가 창조되는 것이다.

 

자신을 알고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삶의 의미 자체가 되고, 내가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악마가 속삭였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이 다시 한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고 작은 일이 다시금 되풀이될 것이다.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로 돌아온다.

너는 다시 한번, 수없이 계속 이 삶이 반복되기를 원하느냐?"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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