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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팔꿈치 사회, 경쟁이 반드시 옳은가?

by 자유를 그리다 2022. 1. 14.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때문에 경쟁을 하며, 결국 낮은 자존감에 대한 보상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 알피 콘

 

팔꿈치 사회, 목차

 

팔꿈치 사회 목차

 

팔꿈치 사회, 책 속으로

 

강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편협하게 해석한 적자생존 및 약육강식 논리를 인간사회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 '사회적 다윈주의'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거의 지배하게 되었다. -p45

경쟁이 낳는 비극 중 하나는, 타자의 불행을 자기 행복의 기초로 삼는 일이다.
경쟁이 낳는 최대 비극은,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모두 공멸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 p50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이 인간 존엄성의 원리 아닌가? 그러나 경쟁 시스템은 존중받을 사람과 대다수의 무시해도 좋은 사람으로 가른다. 극소수의 존중받는 이들은 많은 경우 '우월감'에 젖어 산다. 이것이 지나치면 타자를 멸시하기 쉽다. - p68

'갈-비의 변증법' 이 작동하면서 인간성 소외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갈-비의 변증법' 이란 아랫사람에 대해선 적절히 갈구고, 윗사람에겐 잘 비벼야지만 주어진 시스템 속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
고유의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회사형 인간' 들이 바로 그런 식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기업 조직만이 아니라 조폭 집단의 경우나 군대 조직, 정치가들의 조직 역시 그런 면모를 보인다. -p75

학교는 경쟁이 초래하는 비인간적 결과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비인간화를 무릅쓰고라도 오로지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p92

팔꿈치 사회, 서평

 

팔꿈치 사회


책의 표지나 책의 표지 저자 소개란을 간략히 보니, 솔직히 특정 이념에 치우쳐진 학자가 쓴 책이란 느낌이 들긴 했다. 이 말은 내 안에 새겨진 어떤 편견이 조금은 발동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최대한 이 편견을 지우기 위해, 저자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검색 따위는 하지 않고 글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다.

 

서평에 앞서 이 책은 어려운 책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속한 인간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저자만의 철학과 의견을 다룬 글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점에서 평소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독자라면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한잔한 기분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면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은 일단 저 멀리 내려놓고 저자가 말하는 내용은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좋은 가치가 있는 책으로 평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 강수돌 님이 주장하는 내용의 전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들도 있었다. 특히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에 가기까지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그렇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누구나 당연히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을 자주 경험하지 않나?

이 현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흔히 자식을 빗대어 깨물어서 아픈 손가락이 없다곤 하지만, 불행히도 받아들이는 자식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들은 어릴 적 부모들의 형제간 차별에 서운해한다. 급기야 이 어린 시절에 차별받은 기억들은 뇌리 깊숙한 곳에 트라우마로 새겨져 삶의 무게로 짓누르곤 한다.

조금 더 커서 학교라는 교육 시스템 조직은 또 어떤가? 행복한 삶이 목표인 인생의 여정 중에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한 공부로서 줄을 세운다. 공부 즉 시험 점수를 치뤄 줄을 세운 후 여기서 살아남는 소수의 우등생들만 학교라는 영역 안에서 우월감을 갖게 된다.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될수록 '시험'과 '점수'의 압박은 날로 심해져 간다. 한 창 뛰어놀고 넘쳐나는 에너지로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며 좋은 경험치과 추억을 쌓아도 모자랄 인생 황금기에 시험 경쟁에서 뒤처질까 하는 압박감으로 인한 공포에서 그들의 삶은 위축되고 마비되어간다.
나처럼 9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은 기억할 듯싶다. 소위 '야간 자율학습' 세대들은 당시 유행어처럼 번졌던 '15명을 위한 들러리' 란 말을 기억할 듯싶다. 15명을 위한 들러리. 소위 대학 진학이 가능했고 우월감이 자연스레 몸에 밴 대략 15명이 있었고, 나머지 등수에 속하지 못했던 열등생들은 이 대학 진학이 가능한 15명을 위해 존재하는 그저 들러리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말의 의미만 봐도 이때도 이상한 경쟁과 바람직하지 못해 보이는 차별이란 게 분명 존재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내가 경험한 이 시험 점수를 잘 받던 우등생으로 분류된 15명들이 정말 모든 면에서 우수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시험을 잘 치르고 공부라는 툴을 잘 이용하는 재주가 있던 그들이지만, 실제 인간적인 매력은 이 15명을 제외한 친구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공부 재주는 없었지만 평소 남들을 잘 웃기고 이 웃기는 것만 주로 연구하던 친구, 자신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언제나 털털한 성격과 웃음으로 호감을 주던 친구, 자신보단 주변의 교우 관계에 항상 신경 쓰며 각종 소소한 이벤트로 즐거움을 주던 친구, 우애롭고 정직했던 친구 등등...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봐도, 이때 공부하는 한 가지 재주만 좋았던 친구들보다 이런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던 친구들이 내 기억 속엔 더 좋았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현실의 학교에서 이런 인간미를 뿜으며 인간성 좋던 친구들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시험 점수 경쟁과 그 결과만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경쟁과 차별의 문제점은 신문의 사회 이슈란에 계절적 이슈처럼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둥 또 금방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 당시 시대정신이란 "너도 열심히 해서 쟤들처럼 잘하면 되잖아", "억울하면 출세해"처럼 '힘들지만 우리도 그렇게 살았기에 너희들도 그렇게 사는 게 마땅하다'며 세뇌되어 별 비판 의식 없이 받아들이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 경쟁과 차별의 씨앗은 시간이란 먹이를 먹으며 눈덩이처럼 조금씩 커져 지금의 사교육과 같은 여러 가지 교육 문제들로 변이 된 건 아닐까?

대학이란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서 사회에 나오면 또 어떤가? 겉모양은 다르지만 그 껍데기를 한 겹 벗기고 보면 그 결만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게 회사라는 조직이다. 어떤 회사 조직이나 소수의 기득권이 존재하는 건 직장 경험 있는 대다수들은 공감할 듯싶다. 마치 과거 신라시대 때의 육두품처럼 성골 진골로 나누며 그 영역에서의 그들은 은근한 우월감에 젖어 살곤 한다. 이들은 그들만의 유리 천장을 만들고 천장 위로 속하지 못한 동료들을 소위 '아싸'로 분류해서 다방면으로 무시하고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꽤 오랫동안 많은 회사들을 경험했기에, 어느 회사나 이런 분위기가 없는 회사를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저자는 이렇듯 순수했던 인간이 서서히 삶이 마비되는, 고유의 인간성이 상실되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교육이란 권위적인 이름하에 꾸준히 세뇌한 것을 이유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즉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적자생존의 경쟁 시스템' 이 문제란 것이다. 이에 대중들은 "나만 아니면 돼" 마인드처럼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연대하는 것을 대안중 하나로 제안하고 있다.

  더 이상 '일류대학'이나 '일류직장'을 목표로 살아선 안된다.
우리가 진정 추구할 것은 '일류 인생'이다.
그것은 꿈의 발견, 실력 증진, 사회 헌신의 3요소로 구성된다.
일류대학이나 일류직장은 소수만 성공하지만
일류 인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내 아이가 경쟁의 승자가 아니라
사랑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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