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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퇴 Story

퇴사이후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나

by 자유를 그리다 2022. 10. 18.

주말에 와이프와 딸의 치과 검진이 있어 서울 본가에 며칠 머물렀다. 

어제 와이프와 딸은 시골로 다시 내려갔고, 이번 주는 나만 본가에서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그러던 중 최근 퇴사한 회사의 동갑내기 친구 녀석과 어떻게 연락이 되어, 겸사겸사 약속이 잡히게 되었는데, 사실 퇴사 당일 날 점심 한번 먹자고 그 친구가 약속을 제안했지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별로 내키지가 않아 그날 오전에 일찍 나가야 된다는 핑계로 미뤘던 약속이긴 했다.

 

그날 용산역에 와이프와 딸을 배웅하고, 나는 그 친구와 약속한 그 친구가 사는 동네에 미리 도착했다. 그리고 이 친구의 퇴근 시간이 꽤 많이 남아 미리 근처의 음식점을 알아볼 겸  강제 임장을 하며 늦은 저녁 8시에 만나게 됐는데...

 

 

이 친구를 조금 소개하면, 동갑이고 퇴근길도 비슷해서 입사 초기부터 조금 친해진 사이로, 이후에도 가끔 치맥 한잔하며 서로의 고민도 가끔은 공유하는, 회사에서 알게 된 몇 안 되는 친구이다.

 

이 날 역시 오래간만에 치맥 한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조금의 알코올과 함께 언제나 그렇듯 소위 공장, 똥(회사) 이야기와 그 똥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람 간의 에피소드들이 소환되는데...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날은 차라리 만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옴과 동시에, 퇴사 이후에는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행동 수칙 한 가지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행동 수칙은 다름 아닌 '지금 퇴사한 이 회사 사람들은 가급적 만남을 피하자'이다.

 


 

이 말만 들으면 왠지 내가 평소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모가 난 사람처럼도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지금은 혼자 있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지도 않고 오히려 더 선호하게 되었지만, 한때는 사람 만나는걸 꽤 즐기는 성격이기도 했었다(과거형).

 

그리고 나는 이 애매모호한 당시 내 감정에 대해 지금 이 글을 쓰며 천천히 정리란 걸 한번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한 가지 이유에는,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도 퇴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스스로와의 약속 한 가지를 어긴 이유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 스스로와 약속이란, '보고 싶지 않은 사람(=나를 싫어하는 사람) 보지 않기'였다.

 


 

아, 잘 모르면 오해할 듯한데 물론 이 친구가 그 보기 싫은 사람 중 한 명은 아니다. 또한 여기서 보기 싫은 사람이란 '나를 싫어하는 사람', 아니 '나를 싫어하기에 내가 보기 싫은 사람' 이란 말이 좀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여담이지만 똥간에서 최악의 상황이란, 내가 싫어 하는 사람보다 나를 싫어 하는 사람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어쨌든... 이 친구와 이런 주제로 얘기를 하다 보면, 나를 싫어해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원래 대부분의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요 빌런이란 마법약이 MSG처럼 가끔 나와줘야 재미가 있는 법이긴 하다. 따라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금은 과거형이 된, 한때는 나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 똥간에서 이 빌런들의 등장과 함께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이 친구 관점으로만 보자면, 이런 주제는 그에게는 현재 진행형인 흥미진진한, 다람쥐 챗바퀴도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가끔씩 활력을 돋아주는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관점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게 문제이다.

 

실제 예전에 그 친구로부터 들은 재미난(?) 빌런 에피소드에는 똥간에서 벌어지는 빌런과 나와의 무용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는걸 내가 모르는바도 아니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전개는 대부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흑역사 내지, 퇴사한 지금 현재에서는 아무 쓰잘데기 하나 없는 내 관심 밖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이후 내 기분이 좋으면 좋겠지만, 이게 또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는게 가장 문제인듯 싶다. 즉 내겐 아무런 실익이란 없는, 결국 변화가 불가능한 과거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만 소환이 되어, 이후 내 스스로의 감정만 닳게 된다.

 

이 날의 만남 이후, 퇴사 이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의 소환들로 말미암아, 실제 내 감정은 꽤 많이 닳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서 쉽사리 가시지가 않았다.

 

닳았던 감정이 다시 제대로 채워지기 까지는 아마 또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결국 닳아진 감정과 함께 소중한 시간이라는 가치도 보너스로 소모시킨 꼴이다.

 

결국 나는 퇴사와 동시에 나 스스로와 약속한 '보기 싫은 사람 보지 않기'란 수칙을 보기 좋게 깨버리며, 감정이 닳는 경험과 함께 스스로의 자존감까지 스크래치가 나는 경험을 하게 된 듯싶다.

 


 

다시 한번 간단히 정리해 보자.

 

내가 이 날 퇴사한 회사의 동갑내기인 한 친구와의 만남에서 후회한 이유에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가끔씩 등장하는 똥간의 빌런(나를 싫어하는 사람, 즉 내 관점에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소환되어, 유쾌한 감정이 쌓인 것과 반대의 감정이 쌓였기 때문이다.

 

결론

특히 퇴사한 이유 중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보기 싫은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 유쾌하지 않은 감정으로 퇴사한 회사의 회사 사람들은 (친했더라도) 가급적 만남을 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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