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치유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언젠가 나는 이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것을 알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먼저는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 날부터인지는 정확힌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현듯 블로그라는 곳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삶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남겨 보도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그리고 3년 전 즈음인가?
회사 생활중 조금 힘든 시기가 있었고, 그 한 계기가 나로 하여금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이란 걸 쓰게 한 듯 싶다.
그렇게 나는 지금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매일 아침이면 1시간 정도 조금 일찍 일어나(가끔은 출근 이후가 되기도 하지만) 아침 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글을 쓰게 되는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습관 하나인 이 글쓰기의 묘미를 조금씩 알아차리게 된다.
이 묘미란 바로 내 속에 꼭꼭 숨어서 수면 위로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내 내면의 '아이'를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는 마치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빙산 덩어리 같다. 실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차가운 수면 밑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수면 바닥에 꼭꼭 숨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빙산 덩어리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글쓰기란 그저 수면 아래, 즉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서 잠잠히 머물러, 마치 수도승처럼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끔씩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칠 때면 수면의 빙산 덩어리가 거대한 거동을 조금 움찍 하면서 느낌으로나마 조금은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바닥에서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술렁거리는, 알지 못했던 무의식 속 감정의 조각들을 글쓰기로서 정리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 세계에 흩뿌려진 이 퍼즐의 조각들을 글쓰기라는 툴을 이용해서 의식적으로 하나씩 맞춰나간다. 어찌 보면 자기 스스에게 솔직해져야만 가능 하기에 그리 만만한 과정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쉽지 않은 과정이 있어야만 내면 속의 이 아이는 깨어나지 못한 나 자신과 소통이란 걸 허락하곤 한다.
이런 자기 내면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노, 사랑, 슬픔, 기쁨, 후회, 공포 등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미묘한 차이를 가진 오만 다양한 색을 한 감정이란 것이 잡다하게 흩어져 있다.
하지만 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 중인, 육체가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이란,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이 어둠속의 아이를 간직한 채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곤 한다.
그리고 이 마음속 아이의 어둠이 지닌 작은 상처의 조각들을 조금씩 붙여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마음의 병이다.
혹자는 이 병을 속병이라고도 칭하기도 하고, 학계에서는 이 병이 어쩌면 만병의 근원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 부분에 꽤 공감하는 편이다.
무의식 속에 굳어지는 이 아이의 어둠의 감정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무의식 속 어둠의 감정이란 점점 굳어지기는 속성도 있다.
그리고 이 방향성을 그저 가만히 내버려만 두면, 결국엔 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즉 원인에 의한 결과다.
지구 상의 만물들은 원인이 있고 후행하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이 간단한 메시지를 인간은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일이 있던 3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나와 한 파트에서 일하던 팀원 한 명이 또다시 퇴사하게 된다. 직전에 그를 추천해서 직접 데리고 왔던 팀장이 먼저 나간 이후로 이 친구 역시도 퇴사하게 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평소 일을 열심히 했던 이 친구가 퇴사할 이유는 분명했다. 줄을 잘못 선 죄. 바른말 몇 마디에 윗선의 눈 밖에 났던 그를 데려 온 직전 팀장도 좋지 않게 퇴사했던 터라, 그 불이익이 이 친구에게 까지 가게 된 듯싶다. 당시 우리 팀은 그런 인물들만 모아 놓았다. 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죽을죄가 되는 일들은 죄다 당시 우리 팀의 몫이었다.
바로 직장 생활하면 흔히 보는 사내 정치 게임의 희생양들이다.
그리고 이 친구 퇴사 이후의 그다음 불똥은 그 누구도 아닌 그와 같은 팀에 있었던 바로 나였다.
물론 당시 그 팀장과는 이전부터 서로 그리 좋은 감정이 아니었기에, 나는 다년간 직장 생활에서 터득한 촉으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XX 씨, 혹시 다른 회사로 이직해보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당시 내가 연봉 협상 때 작은 회의실에서, 그 친구를 나가게 했던 그 팀장에게 들었던 이 말을 시작으로, 나는 별에별 소릴 듣기 시작했고, 잡다한 사건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의 불합리한 조직 개편 후에 또다시 한직으로 밀려나게 된다.
"만약 조선 시대였다면 유배형 같은 귀양 살이가 이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조선 시대의 선비같은 신분은 분명 아닐 테지만, 어쨌든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하며 2021년에 나는 그의 상황과 느낌의 결을 조금이나마 체험해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당시 나의 상황이 떠오르게 하는 잔잔한 느낌의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정약전 선생님의 일생을 다룬 '자산어보'라는 영화이다.
지금의 잔잔한 섬인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 선생님은 유배 생활중에도 학자로서의 업을 이어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이는 황량한 섬에서 조차도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어떤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되는데, 바로 바다 생물에 매료가 되어 글쓰기라는 것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부조리하고 부패한 나라의 정치 싸움에서 밀려나 죄인의 신분으로 비록 몸은 그 섬이라는 장소에 갇혀는 있지만, 그의 정신만은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글쓰기라는 걸 하는 궁극적인 이유 역시도 그 결만은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비록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서 직을 바꾸고 몸을 가둬놓을지언정, 누가 되었든 나의 정신만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3년이란 시간이 또 흘렀다. 아직도 나는 지금 이 회사에 머물러 있고 햇수로 10년 차가 된다.
지금도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이후로 나는 자신 내면에 감춰진 이런 어둠의 감정들을 그저 글로서 내뿜으며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숨어서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들을 치열하게 찾아서 얘기하다 보면, 나 스스로 그들이 알려 주지 않는 감정이란 것들을 조금씩 알아차리게 된다.
어쨌든 그날 내게 시련을 주었던, 대오 각성의 계기는 결과적으로도 나에겐 축복이었다.
이후로 여러가지 긍정적인 여러 가지 변화들이 일어났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다.
당시 이 시련의 동력이 없었다면 이런 시도조차 했을까? 어쨌든 나로 하여금 이 블로그를 통해 나 자신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변화를 이끌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글쓰기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마음과 몸은 조금씩 치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은 어떤 누군가가 직접 관여해서 치유할 수 있는 문제의 것도 분명 아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 속 이 아이의 어둠을 치료해주는 주치의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만이 제일 잘 알 수 있는 영역이기에 어떤 저명한 전문가가 와도, 자신의 부모나 배우자라도 완전히 치유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 자신의 이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주치의는 지구 상에 오직 한 사람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주체인, 나라는 한 사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 주제 저 주제 가리지 않고 내 마음이 알려주는 대로 글쓰기를 시도한다.
글쓰기는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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