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소설책을 좋아하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책을 좋아하지 않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이쯤에서, 문득 나는 내게 질문해 본다...
누군가가 내게 하루키 소설을 한 단어로만 말해보라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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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의식하지 않고 기억의 공간에서 들여다보자면,
사실 너무 많은 잡다한 단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간다.
상실, 야한 일본 소설, 일본인 정서, 개인주의, 외로움, 현대인, 일본 거품 경제, 맥주, 담배, 재즈, 고양이, 샌드위치, 수제버거, 오이 김말이, 여행, 죽음, 소멸, 단독자, 청춘, 자존감, 노르웨이의 숲, 와타나베, 미도리 등등...
그리고 이 중에서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단 세 가지 키워드만 골라보면?
음... 내 경우는 '동질감', '치유', '진솔한 자전적 진솔함'으로 정리될 듯싶다.
또다시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마도 이유를 찾으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꽤 오래전으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설명이 될 듯싶다.
내가 (하루키 씨가 아닌) 하루키 씨의 책을 처음 만났었던 게 20대 중반쯤이었나?
당시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일단 취업을 해야 하는 절박한 심정에 연고지도 없던 서울로 묻지 마 상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순수 운빨로 취업 후에 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회사라는 또 다른 영역에서 (쫌 많이) 적응을 못하고 방황을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던 중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나는 서점이란 곳을 자주 들르게 되었다.
이 서점이란 곳은 내게는 낯설고 낯선 이상한 나라의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나름의 현실 도피처였다고 나 할까?
당시 대부분의 IT 개발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잠을 자러 집에 잠시 들르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에서 보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리 살았던지... 아 아, 내 청춘이여~~
그리고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 내 시간을 팔아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다람쥐 채바퀴 도는 생활을 반복 또 반복하게 되는데...
이런 생활은 전혀 내가 대학 시절부터 꿈꾸던 그림은 분명 아닌것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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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올라온 어눌한 청년이라는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캐릭터로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하며 하루하루 버텼던 거 같다. 이상과 실제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으로 좌절감도 맛봤지만, 때로는 이렇게 스스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에 또 대견함(?)도 느끼며, 마치 내 안에 아수라 백작이 나를 조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이런 현실의 괴리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곳은 없을까?" 란 생각을 하게된 듯싶다.
점점 내면의 무의식 세계에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축적되는 노폐물처럼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그렇게 무의식에 이끌려 들락거린 서점이란 곳은, 당시 내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물 한 목음은 살짝 적실수 있게 해 주던 신기루와도 같았던 장소였다고 나 할까?
분주한 일상과 대조되는, 조용하고 서정적인 음악이 흐르는 그곳이 나는 참 좋았었다.
이후에 그 장소가 도서관으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내게는 현실의 도피처로 자주 활용되던 곳이었다.
또 그곳은 진짜 나를 찾아 줄 것만 같았던 나만의 여행 장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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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봐도 봐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흥미라는 것이 잘 생기지 않았던 자기 계발 책들을 뒤로하고, 본성에 이끌려 베스트셀러 소설 코 너란을 서성이게 되는데...
그리고 내가 꿈꿨던 회사 생활과 현실의 회사 생활에서의 괴리감에서 오는 공허함을 달래줄 것만 같았던 책 한 권을 집었다.
"상실의 시대?"
"오오~ 제목 느낌 있네? 뭔가 상처 받은 내 영혼을 치유해 줄 것만 같구나~"
"하루키? 세계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엄청 대단한 작가인가 보다~"
그리고 내가 그의 수많은 애독자 중 또 한 명의 애독자가 되기까지는 이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했다.
이후로 나는 짬짬이 시간만 나면 근처 서점이나 도서관을 들러 하루키 씨의 책들은 모조리 보게 되는데...
이렇게 당시 내가 하루키 씨의 책에 매료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나는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싶다.
첫째, 동질감
하루키 책 속의 주인공과 내가 처했던 당시 상황들이 비슷했다는 점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의 동질감이 아니었을까?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가 그러하듯, 하루키 책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주인공들은 대중 친화적인 캐릭터는 분명 아니다.
일명 아웃사이더처럼 단독자로서 외롭지만 그렇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당시 내 상황 역시 그러했듯 말이다.
요즘과 같은 사람 만나기 힘든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더욱 공감되지 않을까?
둘째, 치유
의식적으로 깨어나 치유한다는 점
주인공 내면의 무의식을 깨워 점차 치유해 나가는 한 편의 치유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다소 수동적인 모습으로, 일반적인 세상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평범한 캐릭터들이다.
또한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어릴 적 환경적인 요소나 인간관계에서 겪은 그들만의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시작은 아픔을 간직한 미성숙한 캐릭터이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여정을 거치며 꼬여진 실타래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수동적이지만 때로는 적극적인 모습도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상황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성장 드라마...
이렇듯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이 인상 깊다.
자신을 마치 제삼자의 시선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내게는 마치 성지순례를 떠나는 여느 순례자의 모습처럼으로 비치거나 또는 그의 소설에 자주 판타스틱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본성과도 비슷했달까?
어쨌든 결과적으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나'가 자신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을 풀어가며 치유를 하게 된다.
이런 점이 내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홀로 태어나 시간이 지나면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그의 소설 '1973년의 핀볼'에 나오는 '모든 사물에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는 논리와도 일맥상통할 듯싶다.
이런 이치를 받아 드리며 단독자로서 묵묵히 세상을 여행하듯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스스로를 치유하려면 반드시 의식적으로 스스로 깨어나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루키 소설을 그저 흥미적인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과소평가되는 부분 중 하나로 보인다.
셋째, 진솔한 자전적 경험
진솔한 주인공 자전적인 경험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 그려진 모습들은 하루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자전적인 모습들이 많이 그려진다.
물론 철없던 젊은 날의 추억일 지라도 그런 경험들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분명 아닐 듯싶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런 자신의 경험들을 진솔하게 소설책에 녹여 놓았다.
이런 진솔한 모습이야 말로 독자로 하여금 진짜인양 더 빠져들게 하는 요소는 아닐까?
실제로 그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하루키가 밝혔듯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전체가 실화는 아니다.
하지만 하루키 소설을 경험한 독자라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룬 부분에서 실제 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힘든 것이란 것쯤은 대부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로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나 '쥐'로 등장하는 캐릭터의 심리에서 그런 모습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요약한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하는 하루키 소설을 탐독하게 되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첨가로 들어가는 각가지 소재들 역시도 책의 맛을 더 돋우게 한다.
이를테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배경으로 그려지는, 주인공 '나'와 '쥐'의 아지트인 그 술집을 떠올려 보라.
마치 재즈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자신 역시도 맥주에 취한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나?
이 정도가 내가 하루키의 소설에 탐독하며 일명 '하루키스트'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좀 더 하루키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해 보고 싶은가?
'하루키스트'를 위한 하루키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 있어 소개할까 싶다.
'하루키의 언어'라는 책이다.
만약 당신이 '하루키스트' 라면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한다.
- 본문 중 -
From 하루키
일본 문학:
기와카미 이에코, 오기와 요코, 혼다 다카요시, 신카이 마코토, 스가 시카오,
프랑스 문학:
아멜리 노통브, 장-필리프 투생, 크리스턴 몬탈베티
아시아 문학:
왕지웨이(홍콩), 우밍이(타이완), 김연수(한국), 편혜영(한국)
To 하루키
미국 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커트 보니것, 트루먼 커포티, 레이먼트 챈들러, 리처드 브라우티컨
일본 문학:
우에다 아키나리, 나쓰메 소세키, [헤이케 이야기]를 비롯한 고전 문학
러시아 문학: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안돈 체호프, 레프 톨스토이
철학, 심리학:
이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카를 융, 가와이 하야오
미국 영화:
데이비드 린치, 데니스 호퍼, 마르크스 형제
음악:
스탠 게츠, 밥 딜런, 비틀즈, 아마데우스 볼드강 모차르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마일스 데이비스, 텔로니어스 멍크
하루키 언어 100배 즐기는 방법
1. 독특한 언어 유희
하루키 작품의 최대 매력은 '하루키 특유의 비유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점'
'무엇을'보다 '어떻게' 쓰였는지를 즐기자.
2. 모든 작품을 망라한다.
단편서와 번역서를 포함한 모든 작품을 해설했다.
3. 칼럼을 즐긴다.
칼럼으로 정리했다.
하루키 작품의 큰주제:
초기에는 현대인의 고독과 상실감
'인간관계를 어떻게 수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가 하나의 큰 주제이다.
어긋난 인간관계가 그리 쉽게 해결되지가 않는다.
이런 사회성이 결여된 부분을 특유의 판타지적 요소로 채우는게 아닐까.
어른들의 동화다.
프랑스의 판타지 소설이라하면 매우 어둡고 무서운 스릴러를 떠올린다. 반면 하루키 판타지 소설은 가볍게 읽기 좋은 동화같은 느낌이랄까
치유의 문학이다.
현대인에게 상실감과 고독감을 잊게 해주는 것은 중요한 주제중 하나이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무엇 하나가 결핍되어 있는 공통점이 있다.
주부인데 아이가 없거나, 외동이거나 곁의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던디 하는 그런 공통점 말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결핍된 인간관계를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런 결핍된 인간관계는 차가워 보이는 현실세계로 보이지만 책속에서 그려지는 소소한 일상들을 보고 있자면 독자들은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점이 독자에게 이입감을 주며 읽으면서도 치유가 된다.
하루키의 요리들
제대로 만든 햄버거, 명랑젓 버터 스파게티, 오이김말이, 콘비프 샌드위치, 완벽한 오믈렛, 스트라스부르 소시지 토마토소스 스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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